? 사역소개 밥퍼 나눔운동

밥퍼 나눔운동 역사

섬김과 나눔을 통해 화해와 일치의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더불어 만들어 갑니다.

일도야..너는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길바닥에 눕혀 놓을 것이냐?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1기 (1988년 11월 ~ 1990년 3월)
'라면으로 나눔을 시작하다'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주님! 청량리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1988년 최일도 전도사가 청량리 역전에서 사흘간 밥을 굶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만남으로 비롯된 밥퍼나눔운동은 냄비하나로 지극히 작은 것(라면)을 무의탁 노인 , 행려자 , 노숙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나눔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2기 (1990년4월 ~ 1994년 7월)
'드디어 밥을 나누다'


1990년 부활절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처음으로 밥상이 차려진 이후 이름모를 선한사람들과 동네 주님들의 협력으로 라면을 나누었으며 ,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웃의 일곱교회의 후원을 시작으로 수십교회와 단체들의 협력이 이어져 매일 500명 이상의 도시빈민들을 위한 밥상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3기 (1994년 8월 ~ 1999년 5월)
'오병이어 식당을 열었으나'


청량리 다일공동체 건물 1층에 조그마한 오병이어 식당을 마련하였으나 줄을 잇는 밥상공동체 식구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하여 쌍굴다리에서 배식이 계속 되었던 시절입니다.
밥상공동체 식구들은 여전히 비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며 길바닦에 앉아서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1998년 사회복지봅인 다일공동체를 설립하고 밥퍼나눔운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4기 (1999년 6월 ~ 2005년 4월)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다'


2002년 8월 9일 14년만에 마침내 거리 배식을 끝내고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며 최소한의 인간답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작지만 오랜 소원이었던 밥퍼나눔운동본부를 동대문구청을 비롯한 아름다운 손길의 도움으로 활짝 열었습니다.
더불어 국내를 넘어 해외 이웃들을 향한 꿈이 1999년 6월 중국에 다일어린이집을 개원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한 발짝씩 전진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2002년 6월 베트남 다일공동체를 시작하였고 , 2004년 3월에는 캄보디아 다일공동체를 창립하여 , 청량리를 넘어 아시아 빈민촌까지 사역이 확장되었습니다.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5기 (2005년 5월 ~ 2011년 4월)
'밥퍼나눔운동을 국민운동으로 확산하다'


2005년 5월 2일 청량리 역전에서 밥퍼나눔운동 발대식을 갖고 밥퍼나눔운동 20만명 서약 및 후원모집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전국 각지를 순회하는 캠페인을 통해 밥퍼나눔에 대한 동참활동을 전개하였으며 , 사역의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활발한 모금운동은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청량리밥상공동체 가족들이 '자존심유지비' 로 자율적으로 낸 동전 100원을 모은 금액으로 2005년 9월 필리핀 다일공동체를 설립하였고 , 2008년 1월 네팔에도 다일공동체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밥퍼나눔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확산되면서 다일공동체의 해외진출은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밥퍼 나눔운동 역사
제 6기 (2001년 5월 ~ 현재)
'청량리를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향한 꿈'


2011년 5월 청량리 밥퍼에서 퍼진 밥 그릇수가 500만 그릇을 넘었고 , 해외에서 퍼진 밥그릇 수 까지 합하며 1500만 그릇을 넘었습니다.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 변모한 한국의 발전에는 참 교육을 통한 섬기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밥 뿐만 아니라 섬기는 인재로써 양육하여 자국을 살리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꿈을 꾸며 나아갑니다.